복음의 가치를 확신하라 [가정예배] 찬송 : ‘주님의 귀한 말씀은’ 20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6절 성경은 역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들이 점차 불경건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사람들은 경건한 삶보다 본능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사는 방향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망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최후의 심판과 천국에 대한 믿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는 복음의 엄중함을 완화하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어떤 물건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사은품을 섞어 팔듯이 교회는 점차 복음과 다른 것들을 섞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죄 사망 부활 심판 그리고 영생에 대한 강조 없이 단지 그 열매인 도덕과 구제만을 말하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말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만한 사회적 이슈들을 그리스도인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당신 안에 선한 것이 감추어져 있으니 그 감추어진 의로움의 능력을 계발하시오. 그런 당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오.” 이런 사태를 우려하신 주님은 이렇게 명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 읍소해야만 할 정도로 복음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거룩한 것입니다. 주님은 복음이라는 진주를 돼지, 곧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 주지 말라 하십니다. 그들이 복음을 발로 밟고, 복음 전하는 자를 상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나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복음의 가치에 대해 확신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믿지 않으려 한다면 전도를 그만해라’라는 말씀이기보다 우리 스스로 복음이 지닌 가치를 확신하라는 말씀입니다. 수년 전 교회 앞을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3학년 남자아이가 제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목사님, 편의점에서 과자 사주시면 교회에 나갈게요.” 제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네가 교회에 잘 다니면 훗날 목사님이 사탕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너를 위해 행하려 할 거다. 그렇지만 지금 너에게 사탕을 사줄 수는 없다. 내가 만일 사탕을 사주면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사탕 몇 알 정도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의 전한 바를 반박하고 신성 모독할 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으신 것 같이 우리는 신중하고 관대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복음 증거는 무분별한 것일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영생과 형벌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질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실로 복음은 그들이 좋아하기보다 싫어할 소식입니다. “당신도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입니다”라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진중함으로 우리 주위의 영혼들을 살려내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