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할 일만 잘하면 세상이 변할까 [가정예배] 찬송 : ‘내가 예수 믿고서’ 421장(통 21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 종교개혁 100년 후 유럽은 30년 전쟁(1618∼1648)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여러 나라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헤미아의 수많은 난민들은 집시가 되었고, 독일은 1800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인구가 줄었습니다. 많은 고아들이 생겨났고 마을들은 황폐하게 되었으며 떠도는 군인들은 마치 강도떼와 같았습니다. 설상가상 가뭄과 기근 역병까지 발생했습니다. 30년 전쟁 후 참담한 세월을 보내면서 유럽에서는 내적 반성이 시작되었고 자유와 관용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예배참여가 의무였고 주일예배에 게을리 하면 벌금이 부과되는 지역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입술로만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재적인 무신론 상태였습니다. 이 때 경건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요한 아른트(1555∼1621)는 마르틴 루터의 칭의의 복음이 실생활에 변화를 주지 못함을 깨닫고, 기독교인들을 경건의 삶으로 인도하여 기독교를 회복하고자 ‘진정한 기독교’를 출판하였습니다. 이렇게 개인의 경건을 강조하는 경건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건주의 운동은 유럽의 북쪽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웨슬리 운동이 영국을 무디 운동이 미국을 새롭게 바꾼 것과 비교할 때 경건주의는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자기 할 일만 잘하면 세상이 변할까?”잘못하고 있는 교회, 잘못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립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전부의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복음의 생명력은 교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할까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는 고사하고 가정조차 복음의 생명력이 흘러가지 않을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음의 생명력은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 문 밖으로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복음의 생명력을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 세상을 살리라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부터 여십시오. 세상을 살릴 생명력으로 채우십시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복음의 생명력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성령충만함을 간구합시다. 주기도문 -국민일보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