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 공황장애·우울증 딛고 감독이 되기까지 오륜교회서 간증… <폴란드로 간 아이들> 곧 개봉 10/12일 밤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에서 진행된 '2018 다니엘기도회' 출정식에선 매우 반가운 인물의 간증이 있었다. 바로 추상미 감독. 이름 뒤에 붙은 '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배우'로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고, 마침내 '감독'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오는 31일 개봉한다. 그 동안 그녀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날의 간증의 주요 내용을 아래 요약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연극배우 故 추송웅)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자랐던 전,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를 하다보니, 스스로 배역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됐죠. 가령 한 작품에서 악역을 잘 소화했더니, 계속 그런 역할만 주어지는.... 그러면서 소위 막장 드라마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물론 배역에 좋고 나쁨이나 경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원하지 않는 걸 오래 하다보니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공황장애까지 겪게 됐죠. 그러면서도 연예인으로서의 생활을 쉽게 떨치지 못했어요. 그러다 결혼을 했어요.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서 임신을 핑계로 활동을 접기로 했죠. 결국 아이를 가졌지만 유산하고 말았어요. 충격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러면서 아픔을 잊기 위해 평소 하고 싶었던 연출 공부를 시작했어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갔고,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 국제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었죠. 그러던 중 다시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게 됐어요. 그 때 제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산후 우울증에 걸리고 만 거에요. 정말 극심했습니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어요. 자살충동에도 시달렸고. 죽음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언제 어디서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죠. 그러던 어느날 잠시 잠이 들었어요. 그 때 주님께서 절 찾아오셨어요. 그 분의 첫 마디는 '내가 너의 남편이고 너는 나의 신부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런 뒤 주님께선 쓰러진 절 안고 십자가로 가셔서 못 박히셨어요. 잠에서 깬 저는 울기 시작했어요.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어요. 주님께서 제 모든 상처들을 어루만져주신 것 같았죠. 그렇게 눈물을 쏟아낸 저는 그 때부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했어요. 너무나 행복한 날의 연속이었죠. 하루 7~8시간씩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기도했어요. 성경 통독도 2~3번은 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욕망이 다 사라져서, 하루 빨리 주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날이 빨리 올 것 같지는 않았죠.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주님, 만일 주님께서 제 인생에 계획하신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해볼게요'라고. 그렇게 얻게된 응답이 킹덤빌더로서의 예술가, 즉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제 재능을 쓰는 것이었어요. 감독으로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영화에 녹여내라는 의미였죠.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을까?' 이게 그 다음 고민이었어요. 하지만 이 역시 금새 찾을 수 있었어요. 물론 하나님의 인도로. 그 이야기가 바로 곧 개봉을 앞둔 <폴란드로 간 아이들>입니다. 이 영화는 6.25 한국전쟁 당시 고아가 된 북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당시 많은 전쟁고아가 생겼는데, 북한은 그중 일부인 약 1,500명의 아이들을 같은 사회주의 동맹인 폴란드로 보냈죠. 그런데 그렇게 폴란드로 온 아이들을 돌본 이들 역시 전쟁의 아픔이 있던 교사들이었어요. 그들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가족을 읽는 등 누구보다 그 상처를 잘 알던 이들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교사가 아니라 스스로 북한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주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다름 아닌 독실한 신앙인들이었던 거에요. |